자유와 성 미디어: 얽매임에서 사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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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레미션 조회 7회 작성일 25-06-19 11:55본문
현대 사회는 '자유'라는 가치를 최고의 이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실상 그 본질과는 거리가 먼 ‘방종(放縱)’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무엇을 누릴 수 있느냐'가 아닌 '어떻게 책임 있게 누리느냐'에 대한 물음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자유의 개념은 단순히 얽매이지 않음이나 제약의 부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자유(히브리어: "헤루트", חֵרוּת)는 관계 속에서 자율적 존재로 살아가는 능력, 다시 말해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지는 가운데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다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한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철학은 성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성은 단순히 육체적 충동의 발산이 아니라, 존재의 교감과 책임, 정서적 돌봄이 어우러지는 통합적 관계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점점 더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마저 왜곡되어 가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 미디어는 원래 목적이 ‘욕구 조절’이라는 기능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을 미디어에 종속시키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성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 미디어가 인간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자유는 상실되고, 중독과 왜곡, 환상이라는 족쇄에 묶이게 됩니다.
성 미디어의 문제는 단지 콘텐츠의 유해성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 훈련의 부재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은 부끄럽거나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배워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을 금기시하고, 모자이크 처리나 규제 중심의 문화로만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왜곡된 방식으로 성을 받아들이며, 청소년들은 음지에서 불법적 경로를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고, 심지어 딥페이크 범죄와 같은 비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한편, 성 미디어를 금지하거나 숨기는 방식은 오히려 해당 부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심리적 역설’을 유발합니다. 뇌는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감춰졌다고 인식할 때, 이를 채우기 위해 집중과 상상을 강화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이미지와 과장된 환상이 형성되며,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잘못된 인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 미디어를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콘텐츠를 없애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교육과 훈련입니다.
성 미디어는 잘 활용되면 성에 대한 이해, 자위 도구 활용법, 감정 조절, 자기 신체 인식 훈련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교육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장애인, 청소년, 성적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시각적·정서적 학습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된 실질적 훈련이 필요한 경우, 성 미디어는 단지 자극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장 해소용 터치’, ‘감정 조율을 위한 터치’, ‘상호 존중의 성행위 교육’ 등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때, 미디어는 판타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관계를 위한 준비와 이해의 도구로 기능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유와 책임의 철학은 성 미디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됩니다.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인생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은 소통과 정보 활용을 위한 도구이지, 인간의 감정과 인간관계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성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사용해야 할 도구이지, 우리가 얽매여야 할 주인이 아닙니다.
결국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절제’, ‘나를 위한 권리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자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숙한 자유를 실현하는 길은 억압과 규제의 사회가 아니라, 책임과 관계, 감정과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성 미디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인간답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교육하고 조절하며, 올바른 관계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