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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성 보호케어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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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레미션   조회 299회   작성일 25-07-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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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고 주전공은 영남사이버대학교에서 신학전공을 했으며 또 아동심리상담사 1급과 동탄 심리상담센터의 부설인 아름다운성교육연구소에서 강사이면서 사회복지사 2급(2-1409190) 겁 프로듀서입니다.

저는 극히 보수적인 신앙 속에 장애인 사회에서 리비도에 대한 개념 없이 자란 아이였습니다. 성별의 경계 없이 친구를 사귀었고, 고등학교 때 형식적인 성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친한 선생님 외에는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없어, 감정이 올라올 때면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저는 집에서 책상 앞에 앉아 스스로의 처지를 돌아보며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면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을까?”라는 후회가 저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 거대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니 눈앞이 너무나 캄캄했습니다. 만약 말을 할 수만 있었다면 사회생활을 조금 더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장애로 인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골방에서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자립생활센터에 다니면서 장애인들의 불만과 인권을 내세우는 내용에 동의하고 따라가고 싶지만 어머니께서 그곳에 가지 말아라. 저기는 악한 곳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어머니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이 집에 데려다주시던 중, 갑자기 광헌아! 재상이 형이랑 자립생활센터를 해보면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장애인 단체를 창립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논의준비하는 중 색스발룬티어리는 영화기사를 보면서 사랑하여 결혼하고 아름답게 하는건데 저게 뭐야라고 눈물을 훔치면서 그날 밤에 목사님이 근무하셨던 부자보호시설에 가서 논의중. 저번 날 저희 어머니께서 길거리에서 휴지를 파는 한 지체장애 소년을 보셨다고 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휴지를 파는 그 소년은 문전박대를 당하고, 심지어 모진 욕을 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전 재산을 그 소년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역시 묘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에도 이상한 울림이 밀려왔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깊이 아파서 선교회로 창립했고 그때부터 저는 이런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그 길로 인도하셨던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섭리로 교회를 사임하시게 되었고, 저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진행문을 작성하며 주일 모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없어서 비장애 청년들이 대신 읽어주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초보 사역자였기에, 교육이 절실했습니다. 새로운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드리니, 그분께서 흔쾌히 교육을 시켜주시고 행사 준비도 적극 도와주셨습니다.

한편. 20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성의 신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아는 누나들과 대할 때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적 미다어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 나면, 신앙인으로서 이러한 미디어를 보는 것이 죄짓는 행위라는 생각에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성적 미다어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상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결국 6개월에 한 번 정도 보게 되었습니다. 성적 미다어를 보고 있지만 고민 끝에 목사님께 털어놓았더니, 목사님은 괜찮다. 보고 싶으면 보라. 사회복지에서도 일부러 보여주기도 한단다! 다만, 여기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믿기지 않아, 감리교 전도사이시며 어릴 때에 저를 수양아들로 삼아주셨던 정미희 선생님과 오랜만에 만나뵈어. 식사중 그 고민을 털어놓았으니, 선생님도 내 아들아! 이 마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성적 미다어를 보고 싶으면 죄의식 없이 2주에 한번씩 하렴! , 여기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후로는 마음이 편해졌지만, 당시 저는 여전히 부정적인 마음이 남아 있었기에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잘해주셨던 목사님도 2년 만에 사임하셨고, 이후 교회의 장애인부는 형식적으로 예배만 드릴 뿐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육을 요청드렸지만, 오히려 지적 장애인이나 자폐 장애인은 그럴 수밖에 없다며 무시당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한 센터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면서 좋은 기회로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해보면, 리비도적인 고통을 겪는 장애인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과 거부감이 휘돌아 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있던 센터의 센터장님이 선배 중 한 분을 믿지 못해 정죄하는 일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그 선배는 자립생활센터를 개소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곳에 가고 싶었고, 당시 불미스러운 일로 어머니의 결정으로 인해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선배가 차린 센터에서 사무실 공간을 선교회의 방으로 내주었고, 센터의 직원 한 분이 저의 활동지원사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서브로는 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께서 오전 타임에 활동지원사로 함께하시며 서로 공생 관계 속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퇴근길에 혼자 콜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과속으로 인해 휠체어째 넘어져 머리를 20바늘이나 꿰매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27세 여성 활동지원사와 만났는데, 처음에는 서로 잘 지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감정이 복잡해졌습니다. 활동지원사를 제가 이성으로 좋아한다고 느껴져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같이 지내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잖아요. 근데 그 활동지원사님은 그 감정을 생겼다는 이유로 제가 여가활동, 취미생황 등 다른 곳에 가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을 하면 듣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면 왜 이야기를 안 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선배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센터 문을 닫게 되었고, 그 후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자 활동지원사가 거의 없었고, 저나 그 활동지원사님이나 아직 많이 어려서 저에게 짜증나면서 도와줬었던 마음을 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자, 참자" 하고 버텼지만, 한창 청년 시절이라 이상한 마음이 통제되지 않기도 했고, 남자와 여자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그 활동지원사에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너가 가면 어머니가 들어오시고, 어머니가 가시면 너가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 만약 내가 정신을 놓으면 너에게 나쁜 짓을 할까 봐 두렵다. 미안하지만, 이상한 마음을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만 줘. 30분 정도만 거실에 있어줘.”

그러자 그 활동지원사가 저에게 공감해 주며 그래! 사람인데... 미안해하지 말고 봐요라고 말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태도는 점점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그는 외출 도중 음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부적절한 언행과 성적인 농담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식기를 장난치면서 탱탱하지 않아서 니랑 그거안해!” “휠체어에서 일어나 봐! 그러면 가슴을 만져주고 성관계를 해줄게라는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장난으로 말했더니 ! 신고한거야!“고 위엄했고, 그의 행동은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저를 성희롱 가해자로 몰아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상황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결국 어머니께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활동지원사의 악의적인 행동을 알게 되셨고, 덕분에 3년 동안의 지옥 같은 시간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지금도 제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 보호케어 도입연구를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연구를 붙드는 이유는, 다른 장애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주겠습니까.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의 요청을 단순히 변태적이라고 치부하지만, 사실은 마음을 헤아려 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풀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 보호케어 연구의 핵심은 의료적으로 관리하되 0순위로 먼저 그 마음을 만져주는 데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제가 진보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여리고 소심한 편이며 눈물도 많습니다. 일부러 강한 척하려고 할 때가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와 대화하면서 수치심을 드시겠지만 계속 대화하다보면 연구의 목적이 단순히 남성들의 인권만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여성의 성해방을 위해서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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