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억압 사회가 만든 범죄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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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레미션 조회 20회 작성일 25-08-02 16:15본문
2025년 7월 26일 오후 10시 40분경, 인천시 부평구의 한 도로에서 발생한 사건은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성문화와 그로 인한 억압의 부작용을 다시금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습니다. 20대 남성 A씨가 길에서 처음 본 여고생을 쫓아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보기에는 구조적인 맥락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경찰은 피의자를 긴급체포했고, A씨는 범행을 시인했으나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주소지가 일정하고 증거가 확보되어 있으며,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50730095000065?input=1195m
법리적 판단 또한 적절하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 성을 억압하는 구조 속에서는 그 억눌린 ‘폭발적 욕구’가 결국 여성들에게 향하는 왜곡된 방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성(性)을 ‘금기’로 다루어왔습니다. 가족 내에서도, 학교에서도, 공적 담론 안에서도 성은 쉬쉬하며 넘겨야 할 민망한 주제이자, 감추어야 하는 은밀한 욕망으로 취급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성적 욕구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기능이며, 정서적 친밀감 형성과 자존감 유지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소입니다. 특히 청소년기와 20대 시기에는 성호르몬이 활발히 분비되며, 생리적 욕구는 감정과도 얽혀 훨씬 복합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구를 다룰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해소 경로가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남성 중심의 이성애 문화 안에서, 결혼이 늦어지는 현대 사회 구조는 성적 충동의 발산 시점을 점점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13세, 16세에 결혼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현재는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결혼 연령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까지도 미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는 동안, 청년들은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억눌리고, 감정적으로 방치된 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생존 본능처럼 그 욕구를 ‘출구 없는 고통’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일부는 사회 규범을 위반하면서까지 억눌린 욕구를 표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단지 ‘성욕이 강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욕구 해소의 합리적인 통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근원을 찾기 위한 구조적 분석입니다.
현대 사회는 성미디어나 자위 도구의 사용조차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음란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자위 행위나 성적 상상은 정서적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폭력적 충동이나 비윤리적 행동에 노출될 확률이 낮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들의 상황입니다. 최중증장애인이나 뇌병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은 타인과의 만남이 거의 불가능하며, 신체적으로도 성호르몬의 자연 배출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신체적 욕구와 감정 사이의 불균형에 시달리며, 대부분의 경우 자기 이해조차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성은 삶의 일부이며, 정서적 안정과 자존감 회복에 핵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이들을 위한 적절한 성교육이나 욕구 해소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매매나 성폭력만을 문제 삼을 뿐, 그 배경에 있는 욕구 해소 부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자이크로 가려진 영상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자위 도구나 정서적 자기 조절법을 소개하는 콘텐츠도 제한적입니다. 이로 인해 성적 정보에 대한 접근은 음지로 숨어들고, 비정상적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성 콘텐츠는 점점 왜곡되고 자극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억압은 다시금 약자에게 향합니다. 최근 딥페이크 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범죄 발생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일탈적 반동이라는 신호입니다. 10대들이 교사의 얼굴이나 동급생의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제작·유포하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왜곡된 성 정보 환경이 만들어낸 위험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곧 법적 처벌로 이어지며, 그들에게도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요? 첫째, 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자유는 히브리어의 어원처럼 ‘자기 멋대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책임을 다하며, 자기 존재를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성적 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억제하거나 금기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잘 다루고 책임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대상입니다.
둘째, 성적 자기 조절 훈련과 감정 관리 방법을 체계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자위 도구의 활용이나, ‘긴장 해소용 터치’와 같은 정서적 자기조절 방법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교육 과정으로 통합하여, 자신의 몸과 감정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성적 욕구를 다스리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다스리는 ‘자기 인식’의 기초가 됩니다.
셋째, 성 미디어를 법적 규제만이 아닌, 교육적 도구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미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이미 포르노 리터러시(porn literacy) 수업을 통해 포르노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교육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극물이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고, 동의와 존중의 개념을 훈련하는 장으로 활용됩니다.
넷째, 장애인을 위한 성적 자기 결정권 훈련이 필요합니다. 최중증장애인도 자신의 성적 욕구를 다룰 수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관계 예절과 몸의 이해, 감정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를 통해 왜곡된 판타지에 빠지지 않고, 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A씨의 등장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구속하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책임이며,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성찰하고 나아가야 할 과제입니다.
이제는 성을 감추고 억누르는 시대를 넘어, 올바르게 보고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배움과 존중, 책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과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